'태안 기름 유출 사고'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숭례문 전소'에 이어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가 불길에 휩쓸렸다. 그것도 대한민국 안전을 총책임지고 있는 행정자치부 소방방재청이 입주한 정부 건물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련의 사고에 대해 임기 말 '나사 풀린' 공직사회와 안전불감증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고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예외적인 일' '그게 문제냐'는 식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국민은 사고 후유증과 제2 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대형 사고로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도 갈수록 증가해 "안전불감증과 사고에 대한 공포가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는 위기감도 팽배해지고 있다.

이 같은 대형 사고는 한국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고, 국가신인도를 추락시키는 한편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후유증을 낳고 있다.

◆ 참여정부 말 묶었던 고삐 풀려 '꽝' '꽝'…

= 지난해 12월부터 불과 3개월 남짓한 기간 벌어진 대형 안전사고는 줄잡아 여섯 건. 문민정부 말 대표적 안전사고로 '대한항공 747여객기 추락', 국민의정부 말 2003년 초 '대구지하철 화재' 등의 대형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처럼 '패닉 현상'까지 치달은 적은 없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일련의 사고는 '우연한 일탈의 연속'이라기보다는 임기 말 고삐 풀린 공직사회와 느슨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누적된 위기가 피라미드처럼 쌓였다가 정점에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권 초기부터 거센 국민 비난 여론에 부닥쳤던 현 정권은 내부 결집을 위해 공직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유독 강조했다. 그런데 정권 이양을 코앞에 두고 잔뜩 죄였던 고삐가 일시에 풀리며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만연하고 정부 '위기 관리 시스템'도 덩달아 붕괴되면서 도미노 현상처럼 사고가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은 상식이 어그러지는 대재앙에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별다른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더욱 분노하고 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지난해 5월 인화물질 및 취사도구 반입이 금지된 사적 제195호 효종대왕릉 재실 앞마당에서 LPG통에 버너를 연결하고 숯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해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유 청장은 "그게 무슨 문제냐"고 문제 제기를 하는 언론에 되물었다.

숭례문 화재 소실 이전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잇단 방화 사건이 발생했지만 역시 문화재청은 대책 마련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형 사고에 앞서 일어나는 일련의 '위기 징후'에는 전혀 무관심했던 후진국형 위기 관리의 표본인 셈이다.

산업재해를 연구한 미국의 H W 하인리히는 대형 사고가 한 번 발생했을 때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었고, 그 이면에는 300번의 이상징후가 감지됐었다는 유명한 '하인리히법칙'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최근 40명의 대량 사상자를 발생시킨 이천화재 사례만 봐도 쉽게 드러난다. 해당 사업장이 위치한 냉동창고는 사고가 발생하기 수개월 전 이미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화재신고를 받은 소방서는 "자체 소화했으니 문제없다"는 업체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현장에는 출동조차 하지 않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미비한 소방시설에 대한 점검이 뒤따랐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365일 위기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면서도 별도 사고 발생시 신속히 대처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명을 보호하는 매뉴얼을 갖춰 놓고 늘 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고비용 저효율 사회'로 추락

= 문제는 이런 안전사고 등에 대한 공포 현상으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며 대한민국을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사회로 추락시킬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실례로 시민의 자살, 기관사의 안전사고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 서울지하철 운전기관사들은 지난해 가톨릭대 성모병원 산업의학과 조사 결과 일반인에 비해 7배나 많은 수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전사고 등을 겪거나 목격한 국민의 '안전사고 공포증'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한 의학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이 이런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은 일산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공황장애는 어떤 충격에 대한 지속적 또는 일시적 노출로 인체의 위험을 알리는 알람 시스템이 잘못된 경보를 울리면서 각종 이상 신체 반응이 생기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산재 근로자에게 들어가는 보험료는 2000년 1조4000억원에서 2006년에는 3조1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정부가 집계한 안전사고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액도 2006년만 15조8000억원으로, 노사분규로 인한 손실액의 5배가 넘을 정도로 사회적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는 "지금이라도 국가가 전면적인 재난 및 위기 관리 시스템 정비에 나서지 않는다면 '재난공화국'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지속적인 비용 발생으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출처 : 매일경제신문(www.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