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무원 A씨는 지난 20일 야근을 했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7층 사무실에서 정신 없이 일하다 자정을 넘긴 21일 0시50분쯤 텔레비전(TV)을 켰다. TV 화면에선 한 고층 빌딩에서 시커먼 연기가 계속 피어 오르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눈에 익은 건물이다'고 언뜻 생각할 즈음, 화면 아래에 '중앙청사에 화재'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A씨는 황급히 사무실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옥상으로 피할 생각에 비상계단 문을 열고 나섰더니 계단은 이미 밑에서부터 올라온 연기로 자욱했다. 그때까지 A씨는 아무런 비상벨도, 대피 방송도 듣지 못했다. 이날 새벽 2시40분쯤 청사 1층 로비에서 만난 A씨는 "아무리 공무원이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욕을 듣고는 있지만 생명이 달린 일인데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정부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정부중앙청사는 화재를 예방하는 방재시스템도, 화재로부터 인명을 구할 안전시스템도 엉망이었다. 최양식 행정자치부 제1차관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열어 "건물 2개 층(5~6층)엔 화재 경보가 울렸고, 나머지 층엔 안내 방송 등 다른 방법을 통해 대피하라고 알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야근을 하면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화재 당시 중앙청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31명은 옥상으로 대피했다. 이들 중 청사 5~7층에 있었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화재 경보음이나 대피 방송을 듣고 옥상으로 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7층에서 근무하다 대피한 도모(여·31)씨는 "어렴풋하게 무슨 경보벨이 울린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대피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더구나 8층 이상에서 근무했던 대부분 사람들은 청사 내부가 짙은 연기에 휩싸일 때까지 불이 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16층에서 근무하는 교육부 공무원 B씨는 "경보음을 듣지 못했고 사람들이 대피하는 모습을 보고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옥상 문이 잠겨 있었다"며 "연기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차오르지…, 30여 분간 '불이 조금만 더 위로 번지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감에 떨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느낀 '죽음의 공포'는 중앙청사의 터무니 없는 안전시스템이 불러온 것이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중앙청사 각 층엔 화재감지 장치가 설치돼 있어 화재가 나면 지하 1층 중앙감시센터의 붉은색 경보등이 깜빡이게 된다. 그러나 이 경보등은 건물 전체에 경보음을 울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경보등을 보고 청사 방호원(防護員)이 화재 현장으로 뛰어 올라가 화재를 확인한 뒤, 복도에 있는 화재경보 장치의 유리를 깨고 버튼을 손으로 눌러야만 한다. 이 경우에도 화재가 난 층과 그 위층에만 경보벨이 울린다. 결국 각 층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경보기를 눌러야 한다는 말이다. 17층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화재 경보시스템을 가진 청사에서 근무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불이 심야시간대가 아니라 사람이 많이 근무하는 낮 시간에 났다면 극심한 혼란과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피와 구조 과정도 마찬가지다. 옥상으로 대피해 있던 사람들은 "우리는 완전히 내팽개쳐져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층에서 근무하던 직원 30여명이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나가려 했지만 옥상으로 통하는 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이들은 연기가 자욱한 19층에서 기다리다 10여분쯤 뒤 소방관들이 잠긴 문을 딴 뒤 옥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옥상에 있던 이들을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진화가 끝난 후에도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은 새벽 2시5분쯤 옥탑 구조의 옥상에서 유리창을 통해 소방 상황을 지켜보다 '대충 진화가 끝난 모양'이라고 판단하고 내려왔다고 했다.

교육부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은 "옥상에서 떨면서 연기 때문에 소방관에게 마스크라도 좀 달라고 했지만 들은 체도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청사 상황실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상황실에 물어보시죠. 과연 우리한테 뭐 하나라도 신경 써 줬는지…."

출처 : 조선일보(www.chosun.com)